차생어수천재지하
而慾講明生於數千載之前
이욕강명생어수천재지전
亦已難矣
역이난의
[원문]
서전 서문
(대순전경초판 贊, 초판4:51) ~ 講明於 ('生' 없음)
[음훈]
且 - 또차
載 - 실을재 해(年)재
下 - 아래하 (뒤에)
講 - 욀강
亦 - 또역
已 - 이미이 (너무,반드시)
難 - 어려울난
矣 - 어조사의 (~뿐이다, ~도다)
[단어]
* 數千載之下 ~ 수천년 뒤에
* 講明 - 명료하게 강론하다
[해석]
또 수 천년 뒤에 태어난 생애를 살면서
수 천년 전의 생애를 명료하게 강론하고자 한다
역시 너무 어려울 뿐이다
[해설]
수천년 뒤의 사람이
수천년전에 있었던 일을
명확하게 강론할수 없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책에 대하여 해설하는 사람을
전적으로 믿을수 없다. 완벽한 해석은 불가능이다
마찬가지로 후일에 상제님을 이런분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나 책에 너무 현혹되지마라
[첨언]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본인의 해석 또한
오래 전에 사셨던 상제님의 뜻을
그렇지만 세상사람들이 한문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왜곡된 상제님 말씀을 진리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만이라도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한문해석원칙에 따라 졸필을 가한다.
대순전경초판4:51에 講明於 라고 하면서
즉, 고의든 아니든 집필자의 의도가 개입이 되어서
변형되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下 - 아래하 (뒤에)
講 - 욀강
亦 - 또역
已 - 이미이 (너무,반드시)
難 - 어려울난
矣 - 어조사의 (~뿐이다, ~도다)
[단어]
* 數千載之下 ~ 수천년 뒤에
* 講明 - 명료하게 강론하다
[분석]
* 且 ~ '또'의 뜻이다. 앞에 문장이 있고 '또한' 다음 문장이 있음을 의미한다.
* 生於數千載之下 ~ 생(生)은 문맥상 '탄생(誕生)' 보다는 '생애(生涯)'를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數天載之下' 에서 '재(載)'는 '연(年)'과 같은 의미이다. 직역하면 '수천년(數千載)의(之) 아래(下)에(於) 생애살다(生)' 이며 의역은 '수천년 뒤에 생애살다'이다.
* 而 ~ '그리고'의 뜻이다. 문맥상 '수천년 후에 생애를 살면서(而) 수천년 전에 생애를 강의한다' 이다.
* 慾講明 ~ 직역은 '강명 하고자 한다'이다. 여기서 '강명(講明)'은 '명료(明瞭)하게 강의(講義)함'이며, '욕(慾)은 '~하고자 하다'의 뜻이다.
* 生於數千載之前 ~ 앞서 '生於數千載之下'와 비교하여 끝자가 '전(前)'만 차이가 난다. 의역하면 '수천년 전에 생애살다'이다
* 亦已難矣 ~ '역(亦)'은 '역시'이며, '이(已)'는 '이미'이고, 난(難)'은 '어렵다'는 동사이고, '의(矣)'는 '~일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역시 이미 어려웠을 것이다'는 뜻이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오래전부터(已)도(亦) 풀기 힘든 난제(難題)였을 것이다(矣)는 의미이다.
[해석]
또 수 천년 뒤에 태어난 생애를 살면서
수 천년 전의 생애를 명료하게 강론하고자 한다
역시 너무 어려울 뿐이다
[해설]
수천년 뒤의 사람이
수천년전에 있었던 일을
명확하게 강론할수 없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책에 대하여 해설하는 사람을
전적으로 믿을수 없다. 완벽한 해석은 불가능이다
공자, 맹자, 성경 책 모두 강의하는 사람들 모두가
똑바로 강의하지 않고 있으니,
그들이 좀 아는체 한다고 현혹되지 마라
마찬가지로 후일에 상제님을 이런분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나 책에 너무 현혹되지마라
[첨언]
이 구절을 보는 순간 본인의 해석 또한
오래 전에 사셨던 상제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풀이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든다
그렇지만 세상사람들이 한문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왜곡된 상제님 말씀을 진리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만이라도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한문해석원칙에 따라 졸필을 가한다.
대순전경초판4:51에 講明於 라고 하면서
'生' 을 빠트린 것 뿐만아니라
대순전경초판 贊에도
똑같이 '生' 글자를 빠트렸다는 것은
상제님께서 빠트리셨다기 보다는
초판 집필자가 '生'이 빠진 문장을 옳다고 알고 있었기에
본문에 있는 상제님 말씀에 대해서도 뺀 것이다.
초판 집필자가 '生'이 빠진 문장을 옳다고 알고 있었기에
본문에 있는 상제님 말씀에 대해서도 뺀 것이다.
즉, 고의든 아니든 집필자의 의도가 개입이 되어서
변형되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수천년 전의 생애를 강명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바로 얼마전의 구천상제님 말씀을 기록하고 전하는 것도
오류투성이 인 것임을
'生'을 빠트림으로써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과거의 일을 해설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어떤 말을 하게 될 때의 순간 상황에 대한 제반 여건을 알 수 없기도 하지만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본래 뜻을 완벽하게 알아들었다고 볼 수도 없고
또한 틀리는 글자 없이 정확하게 기억한 뒤에 기록하였는지도 알수가 없으며
전해오는 과정에서 오류나 착오가 생기지 않고 제대로 전하여 졌는지도 알수없다
상제님의 뜻을 가감없이 그대로 전한 책은
아무것도 없다고 보아야 옳다.
그러므로 현재 전하여지는 상제님 말씀에 대해
완전하다라는 확신이 없는 문구를 두고
서로 자기가 옳다라고 논란을 벌이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이 말씀을 두고
'청수를 떠 놓고 읽을만한 구절(대순전경초판4:51)'이라고 하신 뜻은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대에 똑같은 상제님의 말씀을 두고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하는
현 세태를 정확히 예시하시고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하필이면 이렇게 '生'을 빼고
변형되어 전하여질 것을 미리 아시고 말씀하셨다고 밖에
생각할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말이나 글로는 '道'를 전할수 없기에
아는 사람이 직접 전할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과거의 일을 해설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어떤 말을 하게 될 때의 순간 상황에 대한 제반 여건을 알 수 없기도 하지만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본래 뜻을 완벽하게 알아들었다고 볼 수도 없고
또한 틀리는 글자 없이 정확하게 기억한 뒤에 기록하였는지도 알수가 없으며
전해오는 과정에서 오류나 착오가 생기지 않고 제대로 전하여 졌는지도 알수없다
상제님의 뜻을 가감없이 그대로 전한 책은
아무것도 없다고 보아야 옳다.
그러므로 현재 전하여지는 상제님 말씀에 대해
완전하다라는 확신이 없는 문구를 두고
서로 자기가 옳다라고 논란을 벌이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이 말씀을 두고
'청수를 떠 놓고 읽을만한 구절(대순전경초판4:51)'이라고 하신 뜻은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대에 똑같은 상제님의 말씀을 두고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하는
현 세태를 정확히 예시하시고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하필이면 이렇게 '生'을 빼고
변형되어 전하여질 것을 미리 아시고 말씀하셨다고 밖에
생각할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말이나 글로는 '道'를 전할수 없기에
아는 사람이 직접 전할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즉 구천상제님 말씀은 그 당시 바로 옆에서 들어야 알수 있으며
나중에 글로써 전한것은 구천상제님의 뜻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말씀하시는 주변환경과 제반 여건 그리고 듣는 사람의 학식 수준도 알수없이 남겨진 글로만으로는 파악할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구천상제님을 이어서 그 때마다 선생들이 계속 오신다.
즉 살아계시는 선생들이 이어서 오신다
그분들이 그 시대에 맞게 구천상제님 말씀을 변환시켜 일러 주신다
즉, 증산, 정산, 우당으로 이어진다
'時有其時 人有其人'이다.
현세에 대선생(代先生)이면서 대두목(大頭目: 큰 지혜와 안목을 가진 분)이라 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