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方之怨
천용우로지박즉 필유만방지원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
지용수토지박즉 필유만물지원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인용덕화지박즉 필유만사지원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
천용지용인용 통재어심

心也者 鬼神之樞機也 門戶也 道路也
심야자 귀신지추기야 문호야 도로야

開閉樞機 出入門戶 往來道路神
개폐추기 출입문호 왕래도로신

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
혹유선 혹유악 선자사지 악자개지

吾心之樞機門戶道路 大於天地
오심지추기문호도로 대어천지



[음훈]
或 - 간혹혹
師 - 스승사 스승삼을사
改 - 고칠개 바꿀개


[분석]
*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方之怨 (천용우로지박즉 필유만방지원) ~ 天(주어)+用(동사)+雨露之薄(보어) / 則 / 必有(동사)+萬方之怨(보어) 구조이다. '하늘에서 우로지박을 사용한다면 반드시 만방지원이 있다'는 뜻이다. '우로(雨露)'는 봄, 여름에 내리는 비(雨)와 가을, 겨울에 내리는 이슬(露)을 합한 단어이다. '지(之)'는 '~의'라는 뜻이고, '박(薄)'은 '야박(夜薄)하다'는 뜻이다. 만방지원(萬方之怨)은 '만곳(=사방 천지 모두)에서 외치는 원망'의 뜻이다.
농사 짓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비, 이슬은 필수적이다. 홍수 나지 않을 만큼 많이 내려도 저수지 등을 통해서 대처할 수 있으나,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든 곳에서 하늘을 원망할 수 밖에 없다.

*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 (지용수토지박즉 필유만물지원) ~ 땅에는 토질(土質)이 기름져야하고 물공급이 잘 되어야 한다. 앞서 '천(天)의 '우로(雨露)'가 아니라 '지하수, 저수지 또는 강물'을 '수(水)'라고 했으며 농사 짓기 좋은 토질(土質)을 '토(土)'라 표현한 듯하다. 농사지을 물을 제공하고 땅이 기름지게 주체(主制)하는 것은 '지(地)'이다.  그러기에 '땅에 농사지을 물이 부족하거나 토질이 기름지지 않으면 반드시 만물의 원한이 생기게 된다'는 뜻이다. 

*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인용덕화지박즉 필유만사지원) ~  '덕화(德化)'가 한 단어로 보인다면, 그것은 본인이 이미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서 비롯된 소치이다. 문맥상 한 단어가 아니다. 앞서 '우+로', '수+토' 처럼 독립된 2개의 글자를 합쳤듯이  '덕+화'인 것이다.'덕(德)'은 '도덕을 갖춘 마음 또는 행동'이다. 그에 반해 '화(化)'는 주변이 영향 받아서 변해 간다는 것이다. 덕이 없다면 주위에서 그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많음은 당연하겠지만, 덕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혼자만 잘먹고 잘살면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도 원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덕(德)이 박(薄)하거나 화(化)가 박(薄)하다면 인간사 모든일(事)에 원망(怨)이 생길것은 당연하다. 

*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 (천용지용인용 통재어심) ~ '하늘에 비, 이슬 내림'과 '땅이 기름지고 물 적당한 것'과 '사람이 덕 많고 베품이 많은 것' 모두를 통제(統制)하는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在於心) 는 뜻이다.
인용덕화(人用德化)는 당연히 인간의 마음에 있는 거니까 이해가 쉽게 된다. 그러나 천용우로(天用雨露)와 지용수토(地用水土) 또한 인간의 마음으로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心也者~' 이후에 내용이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미리 요약하면, 인간들 마음(心)에 신명(神明)을 담으면 되는데, 귀신(鬼神)을 담음으로 해서 결국은 귀신이 하늘, 땅에 영향을 주어서 천용우로지박과 지용수토지박이 생겨서 세상 천지에 원망이 가득차 있다는 논리인 것이다. 
전체 문장의 핵심 주제를 담고 있으며 이후 문장에는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의 이유를 부연 설명한다. 즉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 [사견] =
인간들이 마음을 바르게 쓴다면 하늘에서 우로가 골고루 내릴텐데 인간들이 마음을 나쁘게 써서 우로가 고르지 않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마음을 바르게 쓰지 않아서 땅의 수토가 고르지 않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하늘에서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는 사막에 관개시설을 하여 농사가 가능케 되여 우로지박을 해결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 도움을 주려는 선한 의지(心)에 신명(神明)을 끌어 들여 성사를 시킨 것이다. 땅에 비료와 퇴비를 사용하여 척박한 땅도 인간의 선한 의지만 있으면 바꿀수 있고, 지하수 개발 등을 하여 수토(水土)가 박(薄)하여도 마음(心)만 있다면 신명(神明)이 응하여 극복해 낼 수 있다. 
전자의 논리는 인간이 우로지박의 원인제공자라는 것이며, 후자의 논리는 우로지박이라는 결과를 인간이 치유한다는 것이다. 전체 문맥으로 보아 전자의 의도로 상제께서 사용하신 것으로 보여진다. 

* 心也者 (심야자) ~ '마음이라는 것은' 이라는 의미이다. '心者' 라고 쓰면 될 것을 하필이면 '也'를 넣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心'은 '심장(心臟)' 처럼 형이하(形而下)의 명사적 개념을 주로 나타내고 '心也'라고 쓴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움직인다, 마음이 변한다'처럼 형이상(形而上)의 동사적 개념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 鬼神 (귀신) ~ 앞뒤 문맥으로 볼때,  '鬼(나쁜 신)+神(좋은 신)' 즉, '惡鬼(나쁜 신)+神明(좋은 신)=神(모든 신)'의 의미이다. 
'鬼神(귀신)'의 뜻은 '나쁜 신'이라는 한단어 명사라는 선입견이 있으면 앞뒤의 문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해석을 할 수가 없다. 수도가 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관점으로만 볼 뿐이지만 수도인이라면 구천상제님께서 무슨 의미로 쓰셨는지 자신의 선입견을 버리고 볼줄 아는 사람이다. 
전후 문맥을 따라 해석하면 '鬼(나쁜 신)+神(좋은 신)=鬼神(모든 신)'이라는 의미로 쓰여졌다. 즉 반대의 글자를 나열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없이 전체 문장을 해석하면 상제님 의도와는 멀어질 뿐이다

* 樞機 (추기) ~ 전체 문맥을 볼때 ‘중추 기관(中樞 機關)’의 줄임말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상제님 재세 당시(1871년~1910년)에 우리나라 백성들이 흔히 쓰던 추기(樞機)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카톨릭이 들어오면서(=1886년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 가져다 쓴 용어 중에 '추기경(樞機卿)'이 있다. 즉 추기경은 카톨릭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관(=추기, 樞機=카톨릭 총본부=교황청) 직속의 경(卿,신하 또는 벼슬)라는 의미이다. 카톨릭 ‘추기경(樞機卿)’에서의 ‘추기’와 본 구절의 '추기'는 똑같은 의미이다. 서울시청 소속 공무원이 아니라 대통령실(=나라의 추기) 소속 공무원이라는 개념과 비슷하다. 
일설(一說)에 문지도리(門樞, 문추) 또는 돌쩌귀(鐵樞, 철추)라 하는 경우도 있다. 문지도리는 문의 회전축을 상하에서 고정하는 것이며, 돌쩌귀(突適䎠, 돌적이 - 내밀돌, 맞을적, 돌이)는 현재 경첩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윗쪽에는 뾰족한 쇠가 아래로 향해 있으며 문짝에 박혀 있고, 아랫쪽에는 고리 모양의 원으로 된 쇠가 문틀에 박혀 있다. 위쪽 뾰족한 쇠가 아랫쪽 고리모양 쇠에 들어가서 회전하면서 현대의 경첩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의미를 추기경에 담았다고 하는 것은 억지로 보인다.
문지도리는 문추(門樞)이고, 돌쩌귀는 철추(鐵樞)라 써야 한다. 추(樞)라는 글자 한 글자만으로 문지도리 또는 돌쩌귀라 주장한다면 잘못된 해석이다. '추(樞)'의 뜻을 문(門)에만 한정하는 것은 잘못이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뜻은 옥편에서 '근원(根源) 추(樞)'라는 의미로 쓰신 것이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바탕으로 상제님 뜻을 해석하려 한다면 어리석은 짓이다. 내 생각을 버리고 상제님께서 글자를 쓰신 의도를 알아보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다음에 오는 ‘문호(門戶)’와 ‘도로(道路)’와 연관되는 해석을 하면 중추기관이라도 ‘주택(戶)의 중추기관’이라는 의미로 한정된다. 주택에서 안채가 식사준비, 바느질, 다림질 등 가정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을 하는 곳이라서 추기라 함이 마땅하다. 사랑채는 집주인의 허락하에 남자들이 잠시 머물며 잡담이나 하는 공간이며 식당, 찻집, 여관의 복합적 유흥 기능 뿐이기에 추기라 볼수 없고 또한 마당 문간방 헛간 뒷간 장독대 화단 우물 등은 추기가 아닌 것이다.

* 門戶 (문호) ~ ‘주택(戶)의 대문(大門)’을 의미한다. 주택(戶)의 내외 경계에 있는 정문(門)을 의미한다. 주택을 예로들면, 앞서 ‘추기’가 집안의 여러 부속물 중 가장 중요한 안채로만 한정하였듯이, 내외 경계를 구분 짓는 구조물은 대문과 담장, 쪽문 등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대문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다시 말하여 쪽문, 방문(房門), 헛간문, 부엌문, 마당 뒷문 등은 ‘문호’가 아니다. 

* 道路 (도로) ~ 길. 대문 밖으로 나가면, 산(山)도 있고 강(江)도 있고 논(畓)도 있고 밭(田)도 있다. 이러한 것은 해당 안되고 사람, 말, 마차 등이 다니는 길을 지칭하는 것이다.

* 鬼神之樞機也 門戶也 道路也 (귀신지 추기야 문호야 도로야) ~  추기, 문호, 도로는 땅에 고정되어 있는 시설이며, 사람이 추기(樞機)에 머무르고, 사람이 문호(門戶)를 지나가고, 사람이 도로(道路)를 돌아다닌다. 마음은 귀신(鬼+神)의 안채이고, 귀신(鬼+神)의 대문이고, 귀신(鬼+神)의 도로이다. 
귀신이 자기 안방인 것처럼 오래도록 머무르기도 하고, 귀신이 자기 대문인 것처럼 들락날락하기도하며, 귀신이 자기 도로인 것처럼 이러저리 옮겨다닌다는 것이다. 
‘추기’는 잘 변하지 않는 마음인 ‘집중(善) 또는 집착(惡)’ 등에 대한 비유이고 ‘문호’는 결정되지 않은 마음인 ‘사색(善) 또는 갈등(惡)’ 등에 대한 비유이며 ‘도로’는 아주 쉽게 동하는 ‘의욕(善) 또는 욕심(惡)’등에 대한 비유이다. 이 모든 것이 귀신(鬼+神)의 소행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 開閉樞機 出入門戶 往來道路 (개폐추기 출입문호 왕래도로) ~ 추기를 개폐하고 문호를 출입하며, 도로를 왕래한다는 뜻이다.
공간적으로 보면 ‘추기’는 ‘내부’이고 ‘문호’는 ‘경계’이며 ‘도로’는 ‘외부’이다. 또한 시간적으로 보면 ‘추기’는 ‘고정(靜)’이고 ‘문호’는 ‘통과(關)’이며 ‘도로’는 ‘이동(動)’이다. 개폐 보다는 출입, 출입보다는 왕래가 움직임이 크다. 
가옥에서 대문을 출입하는 것이 사람이고 도로를 왕래하는 것도 사람이므로 추기를 개폐하는 것도 사람이라야 할것이다. 따라서 ‘開閉樞機’는 ‘(방밖의 상황을 파악하거나 환기 등을 위하여) 사람이 안방(樞機) 문을 여닫는 등의 행위’라야 문맥이 맞다. 

* 神 (신) ~ 문맥상 '神(신)=神明(신명)+惡鬼(악귀)'를 의미한다. 앞구절과 연관하면 ‘樞機 門戶 道路’는 ‘心(마음. 그릇에 해당)이고 ‘開閉 出入 往來’하는 것은 ‘神(신. 그릇에 담긴 물질에 해당)’이다. 바로 뒤의 문맥상 신(神)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모두 합한 개념이다. 즉, 마음은 신명과 악귀가 같이 머무는 곳이다.  

* 或有善 或有惡 (혹유선 혹유악) ~ ‘或’에 대하여 ‘간혹’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간혹 착한것도 있고, 간혹 악한것도 있다’는 의미이다. 즉 선한것(=신명) 아니면 악한것(=악귀)이다라는 이분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독초(毒草)와 약초(藥草)의 차이는, 풀 입장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온 것이지만, 다만 인간 기준에서 좋은 것은 약초(藥草)이며 해로운 것은 독초(毒草)일 뿐이다. 
신(神) 또한 마찬가지이다. 천지(天地) 법칙에 따라 생성되었지만, 인간(人間)에게 이로운 것은 신명, 해로운 것은 악귀라 칭할 뿐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 善者師之 惡者改之 (선자사지 악자개지) ~ 선한 것은 스승삼고(=본받고) 악한 것은 고친다(=바꾼다)는 뜻이다. 이 구절이 '수도(修道)라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명쾌한 해설이다. 즉, 수도한다는 것은 신명을 스승 삼아서 배우려고 애쓰고, 귀신은 개선(改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師(사)와 改(개)가 서로 댓구하기에 해석도 댓구되는 의미로 해석해야한다. 師(사)은 신명을 스승삼아서 내가 바뀌어져야 하는 것이고 改(개)는 내가 상대인 악귀를 고쳐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반대의 의미로 쓰여졌다.

* 吾心之樞機門戶道路 大於天地 (오심지 추기문호도로 대어천지)~ ‘내 마음의 추기,문호,도로는 천지만큼 크다’는 뜻이다. 앞에서 ‘樞機門戶道路’는 마음이며 그릇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신명을 담을 수도 있고 귀신을 담을 수도 있다. 내 마음 크기가 천지와 같다면 여기에 천지의 모든 좋은 신명과 나쁜 귀신 모두 담을수 있다는 의미이다. 더우기 앞서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 라 전제 하셨다. 자신의 마음으로 하늘, 땅, 인간 모두를 다스릴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스스로 조물주임을 나타내시는 구절이다.

[해설]
하늘이 비(雨)와 이슬(露)을 쓰기를 박하게 하면
반드시 만방(萬方)의 원망이 있고
땅이 물(水)과 흙(土)을 쓰기를 박하게 하면
반드시 만물(萬物)의 원망이 있으며
사람이 덕(德)과 베품(化)이 박하게 하면
반드시 만사(萬事)에 원망이 있다

하늘의 씀과 땅의 씀과 사람의 씀이 있는데
이것을 통제하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란 것은
신명과 귀신의 추기이고 문호이고 도로이다
추기를 개폐하며 문호를 출입하고 도로를 왕래하는 것이
신이다 (神=신명+귀신)
어떤것은 착한것(신명)도 있고 어떤것은 악한것(귀신)도 있는데
선한것(신명)을 본받고 악한 것(귀신)은 고쳐야한다

내 마음의 추기와 문호와 도로는
천지만큼 크다(=나는 상제이다)

[해석]
이 구절은 구천상제께서 스스로 어떤 분인지 밝히시는 싯구이다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方之怨’은  ‘(현재) 천용우로지박하면 만방지원이 반드시 있다’라는 단순한 진리의 설명이면서 ‘(과거) 천용우로지박하여 만방지원이 반드시 있게 되었었다’라는 것도 내포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나 이슬이 적다면 온세상에 원망이 생기고
땅에 물길이 없거나 비옥한 토양이 아니면 온세상에 원망이 생기며
사람이 덕을 베풀어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온세상에 원망이 생긴다.
하늘의 우로와 땅의 수토와 사람의 덕화를 통제하는 것은 바로 마음이다.
즉 마음으로 이들(天, 地, 人)을 조절할수가 있다

어째서인가
사람이 집에서 거처하다가
대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서
도로를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에 비유했을때
심(心)은 집이나 대문이나 도로에 해당하지만
이곳에 신명은 당연히 드나들지만 귀신도 같이 드나든다.
마음에 드나드는 신명과 귀신을 잘 다스리면
천지의 신명과 귀신을 다스릴수 있다
그러므로 우로나 수토 관련된 신명을 마음으로 응하게 하여 움직이게 한다면
마음으로 천지를 공정하게 다스릴수 있는 것이다.

신(神) 중에는 선한것도 있고 악한것도 있다.
선한것은 지켜야 하고 악한것은 고쳐야 한다
물론 상제님의 마음에 선한것도 있고 악한것도 있음이다
천지의 모든 선과 악을 동시에 가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그릇은 크기가 천지와 같다.
즉 내마음과 천지의 마음은 같다.
즉 내가 곧 세상의 모든 것이 내 마음 속에 있다.
즉 내가 곧 상제(上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