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해석 원칙

[한문 해석 기본원칙]



한문 문법의 가장 기본되는 구조 는
'주어+동사' 내지
'주어+동사+목적어'  구조 뿐이며
이 순서가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기본원칙입니다.

여기에 '어조사'나 '부사(=보어)'가 첨가되어 있으며
'주어'나 '목적어'는 생략되기도 하지만
'동사'는 결코 생략될수 없습니다.
여기서 '동사'는 형용사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한문에는 구분이 애매합니다.
'동사 또는 형용사'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수 있습니다만 관례적으로 '동사'라 표현합니다
아무리 긴 문장이라도 동사를 찾아낸다면 해석을 이미 반 쯤 한겁니다.

목적어는 우리말에 '~을, ~를'로 해석되는 단어(또는 절)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有始有終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처럼 해석할수도 있지만 '시작을 가지고 있고 끝을 가지고 있다'처럼 목적어로도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동사 다음에  '~이 있다, ~이 없다, ~이 존재한다' 또는 '~에 있다, ~에 없다' 처럼 동사를 자세히 설명하는 '동사보어(또는 보어절)'가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도 넓은 의미로 목적어(또는 목적절)라 부릅니다.

대체로 일반적으로 보어는 주로 앞쪽에 위치해서 바로 뒤쪽의 말을 꾸미게 되며
주어, 동사, 목적어 모두 보어의 꾸밈을 받을수 있습니다

아래의 예입니다만 '明月(명월) 은 '밝은 것은 달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한문문법으로는 '明(명사-밝은 것은)+月(동사-달이다)'이지만, 우리문법으로는 '밝은(형용사)+것(명사)+은(조사)+ 달(명사)+이다(동사)'의 구조로 분석할수 있습니다. 우리말은 세분화된 고급 언어이지만 한문은 진화가 덜된 언어입니다. 

한문은 수천년 전부터 쓰여진 문법이라서
현대적으로 진화된 문법을 적용할수 없습니다. 
또한 영어의 '관용숙어'처럼 쓰이는 경우도 많아서
글자에 얽매이면 안되고 문장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대(大)원칙입니다. 
한자에서는 '주어+동사(또는 형용사)+목적어(또는 동사 보어)' 라는 
투박하지만 엄격한 구조를 가지고 
이런 불명확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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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長文)인 경우
주어(主語)+동사(動飼)+목적어(目的語) 구조에서 
여러개의 단어 또는 하나의 문장이 
각각 주어절, 동사절, 목적절, 부사절(=보어절) 되며
이 때에도
'주어절+동사절' 내지
'주어절+동사절+목적절'의 구조는 변치 않습니다.

한시(漢詩)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댓구하는 2구절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문장구조가  거의 일치합니다. 
그리고
시(詩)는 함축과 생략이 많고

댓구하는 글자는 대체로 반대되는 
의미
를 가집니다.
설혹 뜻이 비슷한 글자라 하더라도 
대립하는 의미를 포함
합니다.

코미디에서 반전이 웃음을 유발하듯이
한시에서는 반드시 댓구하는 구절에서 반전함으로써
희노애락의 감정을 이끌어 냅니다.
이것이 한시의 기본 중의 기본 형식입니다.

그러기에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항상 댓구되는 글자를 서로 견주어서 
의미를 파악
해야
정확한 의미를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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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의 끝글자는 운율(韻律)을 맞춥니다
즉, 댓구를 이루거나(=대구)
같은 자리에 한자 발음이 비슷해야하거나(=압운)
한자의 성조의 높낮이가 같도록(=평측)
시를 짓습니다

이것은 랩에 있어서 라임처럼
끝글자 맞추는 것과 같이
중국어로 비슷한 발음과 성조를 맞춥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에 있어서의 형식과 흥(興)일 뿐이기에
시를 짓는다면 반드시 고려해야 되겠지만
시의 해석과는 무관합니다.

한문 문장에서 한 글자라도
의미없는 글자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한 글자라도
빠트리고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글자수를 맞추기 위해서 삽입되기도 하지만
글자수를 맟춘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큰 원칙은 이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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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와 명사의 구별이 없으며,
자동사와 피동사의 구분도
과거형과 완료형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문장구조와 위치에 따른 문맥을 파악하고 나서 
하나의 글자나 단어에 대한 의미를 파악해야
이러한 구별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숲을 먼저 보고 후에 나무를 보아야 합니다

내용상 '주어'
말하는 사람 본인을 지칭하거나
누구나 알수 있는 경우
또는 특정하기 힘든 경우
에는 생략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동사를 생략하고는 결코 문장을 만들수가 없으므로
동사를 최우선적으로 찾고
그 다음에 주어를 찾아야하며
목적어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찾으면 됩니다.

어조사(語助辭)는 대체로 단어 앞에 위치하며
우리말의 조사(助飼)와 거의 비슷하고
단어 끝에 오는 것은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 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조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똑같은 글자라도 위치에 따라서 어조사가 됩니다
'주어+동사+목적어' 구분이 어느정도 된다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음훈(명사 또는 동사)으로는 해석 안되는 
뭔가 약간 어색한 1개(보통 1글자, 가끔 2글자)의 글자가 
단어 앞에 위치하면 어조사라 판단하고 
그때마다 옥편 찾아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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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는 다양한 조사가 있음으로해서
정확한 의미 전달이 가능하며
어순에 크게 구애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문에서는 다양한 조사가 없는 대신
우리말보다 엄격하게 문장구조를 지키면서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문장에 대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가능한 해석은 있을수 없으며
하나의 의미 만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법 형식을
전혀 고려치 않고 해석하는 것은
한문의 기본을 모르는 큰 잘못입니다.



[한문 해석에 대한 예제]

예를들어
'명월(明月)'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밝은 달'이라는 명사의 의미로
주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장으로 쓰여졌을 경우
'달이 밝다'라고 해석할수 있으나
이런 해석을 결코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어+동사'이므로
'月明'이라 써야만  '달이 밝다'라는 의미입니다.

'明月'이라는 문장의 뜻은
'명(주어)+월(동사)' 구조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따라서 '밝은 것은 달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달이 밝다'라는 것과
의미는 비슷하지만
'밝은 것은 달이로다'라는 것과 비교했을 때
시적으로 느끼는 어감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여기에서 '明(명)'은 주어(명사), 
 '月(월)'은  '달이다'라는 동사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명월백(明月白)' 이라는 문장이 있다면
여기서 '月(주어)+白(동사)' 구조이고
'明'은 '月'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보어라고 볼수 있습니다
결국 '明月' 각각은 '明(보어)+月(명사)'이지만
둘이 합쳐져서 '주어절'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밝은 달은 희다'라는 해석이 가능하며
여기서는 '명(明)'은 보어(형용사) 로 사용되었고
 '月'이 명사로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명월(我明月)'이라는 문장이 있다면
' 我(주어)+明(동사)+月(목적어)' 구조라고 보아
'내가 달을 밝게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그림 속의 달을 향해 후레시로 비추는 것이라 가정합니다)
이때는 '명(明)'은 동사이고
'月'을 '달을'로 해석해야 하며 목적어가 됩니다

결국은 똑같은 '명(明)'과  '月(월)'이라는 
하나의 글자가 위치에 따라서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 로 쓰이고 있습니다.

앞뒤 문맥을 통해서만 이를 구분할 뿐이기에
특정한 한자의 위치에 따른 쓰임새를 파악한 다음에
그 쓰임새에 맞는 한자의 정확한 뜻을
찾아 내어야 합니다.

이러한 틀에 입각하여
유연한 사고를 해야
정확한 한문해석을 할수 있으며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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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將除去無非草
오장제거무비초


好取看來總是花
호취간래총시화

이런 싯구절에서  '
惡' 은 
댓구하는 글자가 '好(좋을 호)' 이기에
당연히 '나쁠 악' 이 아니라 '미워할 오' 입니다

이처럼 한시(漢詩)에서는 
댓구하는 글자 또는 단어를 
고려하지 않은 해석은
무의미한 해석입니다

*

우리의 시(詩)는 
'하늘이 높다'는 것을 표현할려면
'구름 없고 창공은 푸르며 하늘은 높다'
처럼 원하는 표현으로 
다가가면서 감성을 이끌지만
한시(漢詩)는 
'땅이 낮지만 하늘은 높다'
처럼 반대의 표현을 한 후
주제를 제시하면서
감성을 자극합니다

시(詩)의 묘미는 
함축을 한다는 것과 
감정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함축된 의미는 
댓구하는 구절에서 
축약된 의미를 찾아야합니다. 

코미디(comedy)에서 
반전(反轉)을 통해서 웃음을 유도하듯, 
특히 한시(漢詩)는  
댓구하는 구절에서 반전을 통해 
희노애락의 감정을 끌어냅니다. 
이러한 큰 틀을 가진 관점에서 
글자 하나씩을 풀어야 합니다. 
즉 숲과 나무를 동시에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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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북한이 남한을 침범한 전쟁입니다
그러면 남침? 북침? 어느 것이 맞을까요

정확한 문장은
'북침남(北侵南. 북이 남을 침범함)' 입니다
앞으로 이렇게 표기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北(주어) + 侵(동사) + 南(목적어) ]

이것을 줄여서
'북침(北侵. 북이 침범함)'
또는 '침남(侵南. 남을 침범함)'이라고
표현할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남(南)쪽으로 침범(侵)' 했다고
'남침(南侵)'이라 표현하고
'남(南)쪽에서 침범(侵)' 해도
'남침(南侵)'이라 표현하면
혼동되기에 안됩니다.

우리말에는 조사(助詞)가 풍부해서 
어순(語順)에 크게 구애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을 한자로 바꾸고 나서 
조사(助詞)를 떼고 한자를 연결하면 안됩니다.
주어+동사+목적어 틀에 맞게 한자를 끼워 넣어야 합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사랑한다 너를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나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나는 너를
우리말은 모두다 가능합니다

어순(語順)에 따라서
'나'를 강조할 수 있고
'너'를 강조할수도 있고
'사랑'을 강조할수도 있습니다
문장 각각의 느낌이 다릅니다
끝에 주어가 올지, 동사가 올지, 목적어가 올지 
뭐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합니다. 

그러나
영어는    I love you
중국어는 我愛尔
한가지 뿐입니다
주어+동사가 맨먼저 오기 때문에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뒤에는 꾸며주는 말을 나열합니다

우리말과 글은 너무나 위대해서 어순의 틀을 깨고 자유분방합니다
한문은 하급의 언어이기에 거기에 맞는 엄격한 규칙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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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우리글은
글자 하나, 토씨 하나 때문에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한자문화권에서
공자, 장자, 노자 등등의
많은 철학과 사상이 발달했습니다

철학과 사상은 말과 글이 논리적이 아니라면
결코 발달할수 없는 학문입니다.

그 시대와 현시대가 달라서 이해가 어려울뿐
만일 한문을 이렇게도 해석 가능하고 저렇게도 해석 가능하다면
뜻이 불명확한 글들을 가지고는
절대로 철학과 사상을 논할 수 없습니다.

철학 논쟁에 있어서도
의미를 가지고 논쟁할뿐
주어, 동사, 목적어를 다르게 보아서
남침, 북침 처럼
한문 해석이 달라지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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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한글로 풀어서 말씀하시지 않고
어려운 한시를 써서 남기신 뜻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현실을 보고 상제님 뜻을 유추해 보건대
각 종단이나 종파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대로
상제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이 심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위배되면
말씀을 임의대로 편집 내지 왜곡하며, 
심하면 빼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선화후 100년이 지날때까지도
왜곡하거나 임의로 빼고 넣어서 짜깁기 하지 않고
후세에 그대로 전달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시의 형식을 빌리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각 종파마다 아전인수의 해석하도록 여지를 만들어서
자신의 경전에 싣도록 유도하셨지만
욕심과 집착만 버린다면 모든 종파의 수도인들 누구나가
상제님의 진의를 알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
바로 한시입니다
한시가 아니라 우리글 말씀으로 남기셨다면
가감없이 그대로 현재까지 전해 졌을 리가 만무합니다.

어려운 주역 이론을 알아야만
해석을 해야 하는 구절도 거의 없습니다
상제님께서 공부를 아주 많이 한 몇몇 사람에게만
진리를 알수 있게 해주시는 그러한 불평등한 천지공사를
결코 하실리가 없습니다.
상제님께서 선천 주역세상을 뜯어 고치셨는데
주역이론을 가지고 상제님 천지공사를 논(論)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현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또한 상제님 한시(漢詩)의 특징은 
과거에 다른 사람이 지었던 한시 구절을 
많이 차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후인산조개유보 권군범사막원천' 중
'권군범사막원천' 은 명심보감에서
'삼인동행칠십리~' 는 '동국산서'를 사용하셨고
'금옥경방시역려~' 는 8음, 28수, 64괘를 사용하셨습니다
기존의 세상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나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잘못을 고쳐서 바로잡으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나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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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들에게
앞뒤 말도 맞지 않고 횡설수설하고
비약이 심한 글들을 내세우면서
상제님 말씀이라고 우기는 것은

세상사람들을 상제님 가까이로 이끄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단체나 종단의 
정통성과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해서
상제님의 이름을 파는 혹세무민이고
반역 행위이며 대역죄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고 
미래를 표현한 구절도 많이 있습니다.
어찌 모든 해석이 가능할까요?

모르는 것을 모른 채로 두지 않고
자의적인 해석을 가하는 것
그리고
어제 해석과 오늘 해석이 다른 것도
상제님을 받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제님을 욕되게 함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주역으로 풀어서 자신의 무지를 감추고
또한 풀어 놓은 문장이
앞뒤의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 것은
상제님의 뜻과 전혀 관련 없는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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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이나 종파에서
지도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상제님의 진의(眞意)를 왜곡한 것은
상제님과 무관하며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이며

왜곡한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수도인의 무지(無智)인 동시에 도통에 대한 욕심과 집착
이외에 설명할 것이 없습니다

무지했다고 용서받을수 없습니다
반역에 동조한 사람 또한 반역자 입니다

수도인들의 마음에 쳐 놓은
이러한 올가미를 스스로 던져버리고
상제님을 받드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시작은 옥편 하나만 들고
'주어+동사+목적어' 구조를 확인하고
'한시의 댓구되는 글자 비교' 이 2가지만
의지하여 상제님께로 다가가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