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世間何滋味
인생세간하자미
曰衣曰食
왈의왈식
衣食然後 曰色也
의식연후 왈색야
故至於衣食色之道
고지어의식색지도
各受天地之氣也
각수천지지기야
惑世誣民者 欺人取物者
혹세무민자 기인취물자
亦受天地之氣也
역수천지지기야
[분석]
* 人生世間何滋味 ~ '人生世間(보어절)+何滋味(동사절)'이다. 직역하면 '사람사는 세상 사이에 재미는 어떤건가'이고, 의역하면 '사람사는 세상속에서 재미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이다
* 曰衣曰食 ~ 몸안 재미는 '食' 이요, 몸밖 재미는 '衣'이다. '食'은 내 스스로의 몸이 즐거운 것이고 '衣'는 동물의 털에 해당하며 추위와 더위를 막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나쁜것을 차단하여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한끼는 굶어도 되지만 한시라도 추워서는 살수가 없다. 따라서 '衣'를 '食'보다 앞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衣'는 입는 사람의 부끄러운 곳을 가려주고 부귀와 명예를 표현하는 수단도 된다. 그러나 여기서 '食'과 '色' 과 대응하는 개념으로서의 '衣'라고 볼때 몸을 보호하는 기능으로서의 '衣'에 한정하는 것이 앞뒤문맥을 고려할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음에 '色'과 연결된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만 색(色)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존을 위한 입을거리(衣)와 먹을거리(食)가 있다면 즐길거리(色)를 찾게 될 것이다.
* 衣食然後 曰色也 ~ '의식(衣食)' 다음은 '색(色)' 이다. 이것은 '의식(衣食)'은 혼자만으로도 재미를 느낄수 있는 데 반하여, '색(色)은 다른사람 특히 이성이 있어야 재미있는 것이다.
* 故 ~ '앞구절 故 뒷구절' 해석은 '<앞구절>이 원인이기 때문에 <뒤구절> 결과이다' 이다. 여기서 뒷구절은 어디까지인가. 문맥으로보면 '至於衣食色之道 ~ 各受天地之氣也' 까지의 문장이 해당된다.
* 至於衣食色之道 各受天地之氣也~ 이 구절 전체의 주어는 '道'이고 동사는 '受'이다. '도는 받는다' 이다 여기서 '道'는 다음구절의 '者'와 대응되는 글자이므로 다음구절의 '~하는 자' 처럼 여기서 '~하는 도'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 至於衣食色之道 ~ 문맥상 '至於/衣食色之道' 보다는 '至於衣食色/之道'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여기서 '至'는 '이르다'의 의미가 있지만 내용상 '얻는다'의 의미이다. '之道'는 '~하는 이치(=본능)'이다. 직역하면 '의식색에 이르는 도' 이고, 의역하면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의식색을 원하게되고 거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즉 '의식색을 욕심내는 것은' 이라는 뜻이다.
* 各受天地之氣也 ~ '(의식색) 각각은 천지의 기운을 받는다'이다. 위에서 '故'가 있기에 '받는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사람은 의식색을 재미있어한다. 고로 의식색을 추구하는 욕심에는 많은 기운이 실린다'이다. 인간이 좋아하면 천지기운도 인간을 따라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해석해야 '故'를 해석할수 있다
* 惑世誣民者 欺人取物者 ~ 혹세무민은 타인을 정신을 뺏는 것이고, 사인취물은 타인의 물질을 뺏는 것이다. 의식색 욕심을 위하여 타인의 정신을 혼란케하고 사기쳐서 물건을 뺏게되는 일에도 천지 기운이 역시 실린다.
* 亦受天地之氣也 ~ '또한 천지기운이 실린다'는 의미이다.
[해석]
사람사는 세상속에서 재미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의복이라 말하고 음식이라 말한다
의복과 음식 그다음은 색정이라 말하더라
그런 연고로 의복,음식,색정에 이를려고(=얻을려고) 하는 이치는
각각 천지의 기운을 받는다
혹세하여 무민하는 것, 남을 속여 재물을 취하는 것
이 또한 천지의 기운을 받는다
[해석]
인간들은 '의식색'을 재미있어 한다.
그러한 이유로 의식색에 천지 기운이 실리게 되었다.
또한 혹세무민 사인기물에도 천지기운이 실리게 되었다.
[참고]
이 글은 쓰신후 불살으셨으므로 공사에 쓰였다는 것을 전제로 해석한다
상제께서 인간들에게 재미있는 것을 물어보신즉
인간들 대답이 '의식색' 이라 하기에
그러한 연고로 상제께서 천지공사 하시기를
의식색을 좋아하는 연유로 해서 의식색 욕심에 천지기운 싣는다.
남의 것을 빼앗아 의식색 욕심을 채우려는 것에도 천지기운 싣는다.
이러한 공사 이전에
욕심이 있다면 불교의 업보에 따른 원인과 결과가 있었지만
이제는 해원공사(=천지기운)에 의하여
'業' 때문에 욕심이 생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寃'을 풀기 위한 욕심도 일어난다.
[첨언]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섞여 있다.
구천상제께서 오셔서 천지공사를 통하여 해원(解寃)할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셨다. 악업을 모두 닦아서 선업만 남기도록 수도하여 후천선경에 많은 사람이 살수 있도록 공사를 하신 것이다. 물론 수도의 법방은 천부적으로 오신 대두목이 관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원공사에는 동전의 앞뒷면 처럼 동시에 행해지는 것이 있다. 수도를 원치 않는 무리들에 대하여 정반대의 공사를 하신 것이다. 자신이 과거 쌓아두었던 선업(善業)만큼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수 있게 열어 놓으신 것이다. 즉 선업은 현찰이고 자기가 가진 현찰만큼 원을 풀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증산계열 종단에서 종통을 계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추종자들로부터 떠받들려지는것, 대두목이 아닌데도 종교의 수장으로 떠받들려지는 것이 바로 과분한 해원이고,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속아서 각자의 종단을 지키고자 하는 방편으로 내려지는 직책과 금전에 욕심을 내어서 오히려 구천상제님을 방패막이로 삼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렇게 해야 왕후장상의 권세를 누릴수 있고 그에 대한 원한을 풀어두어야 개벽때 척살시켜도 아무런 원한이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개벽기에는 사람이 2종류밖에 남지 않는다
순수하게 선한사람과 순수하게 악한사람 뿐이다.
상제님 말씀에 조금이라도 악한 마음이 있다면 개벽 올때에 터져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후천에 살아남을 사람들은 복록수명이라하여 남은 선업만큼 후천수명이 결정될 것이다.
이 문구를 다시 음미해보면
사람들이 의식색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므로
구천상제는 천지공사를 통하여
의식색에 대하여 선업(善業) 대신 해원(解寃)하게 하는 기운을 붙여 놓았다.
마음껏 즐거움을 누려서 부디 해원하기를 바라는 상제님의 마음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