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경방시역려 석문태벽검위사
絲桐蕉尾誰能解 竹管絃心自不離
사동초미수능해 죽관현심자불리
匏落曉星霜可履 土墻春柳日相隨
포락효성상가리 토장춘류일상수
革援瓮畢有何益 木耜耕牛宜養頤
혁원옹필유하익 목사경우의양이
[음훈]
瓊 - 구슬경 옥경 붉은옥경
苔 - 이끼태
旅 - 나그네려(여) 무리려(여)
儉 - 검소할검 적을검
師 - 스승사 벼슬사 무리사 괘이름사
絃 - 줄현
解 - 풀해 깨달을해 분할할해
解 - 풀해 깨달을해 분할할해
離 - 떠날리
匏 - 박포 별이름박 악기이름박
履 - 밟을리
隨 - 따를수
曉 - 새벽효
耜 - 보습사 쟁기날사 (보습 : 쟁기 여러부분 중에서 땅과 직접 접촉하는 뾰족한 부분)
匏 - 박포 별이름박 악기이름박
履 - 밟을리
隨 - 따를수
曉 - 새벽효
耜 - 보습사 쟁기날사 (보습 : 쟁기 여러부분 중에서 땅과 직접 접촉하는 뾰족한 부분)
宜 - 마땅할의
頤 - 턱이 기를이 봉양할이
[단어]
[분석]
** 1째 글자 : 金,石,絲,竹,匏,土,革,木 ~ '8음(音)'에 해당한다. 악기는 재료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므로 이를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팔음을 일반적인 순서 그대로 시의 첫번째 글자에 나열하여 '운자(韻字)' 삼아서 지은 것이다.
** 4째 글자 : 房,壁,尾,心,星,柳,畢,牛 ~ '28수(宿)' 중 하나씩 골라서 4번째 같은 위치에서 멋지게 대비하여 놓았다.
** 7째 글자 : 旅,師,解,離,履,隨,益,頤 ~ '64괘(卦)'중 하나씩 뽑아서 각 구절 7번째에 사용한것 뿐만 아니라 2구절의 '師[shī]'와 6구절의 '隨[suí] '를 비슷한 발음으로 운율을 맞추었고 4구절에서 '離[lí]' 와 8구절에서 '頤[yí]' 의 사성(四聲) 운율을 완벽하게 맞춤은 너무나 절묘하다고 할수 있다.
**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한정된 글자인 8음과 28수와 64괘만 가지고서 문맥을 연결하면서도 운율까지 맞추면서 시를 쓴데 대하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1, 4, 7 째 자리에 배치하는 것은 천지 이치에 통달(通達)하지 않으면 이러한 글을 지을수 없다고 보여진다.
* 匏落曉星 霜可履 土墻春柳 日相隨(포락효성 상가리 토담춘류 일상수) :
* 革援瓮畢 有何益 木耜耕牛 宜養頤(혁원옹필 유하익 목사경우 의양이) :
[해석]
화려하게 지은 건물에는 윗분을 거스르는 무리들이 가득하고
소박하게 지은 건물에는 윗분을 받드는 무리들이 많이 없구나
사동과 초미를 분리할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관악기 소리와 현악기 소리는 같은 음악을 합주하면서 하나가 되는구나
새벽에 박이 떨어지고 박덩쿨에는 서리가 내려 덮고 있지만
흙담과 옆에 있는 봄버들에는 햇볕이 내려 쪼이는구나
마원, 필탁 같은 쓸데없는 집착이 무슨 소용있으리
나무쟁기 끄는 소를 이용해서 농사지어서,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길러내는 것이 마땅하도다
[해설]
* 金屋瓊房 視逆旅 石門苔壁 儉爲師(금옥경방 시역려 석문태벽 검위사) :
* 絲桐蕉尾 誰能解 竹管絃心 自不離(사동초미 수능해 죽관현심 자불리) :
* 匏落曉星 霜可履 土墻春柳 日相隨(포락효성 상가리 토장춘류 일상수) :
*****
1,3,5,7구절은 절망의 대순진리회를 모습을 그리고 있고, 2,4,6,8구절은 희망 가득한 판밖의 대두목 종단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놓으신 예언시이다.
頤 - 턱이 기를이 봉양할이
[단어]
거문고 ~ 중국에서 '칠현금(七絃琴)' 줄여서 '금(琴)'이라 부르는 7줄 악기를 가져와서, 고구려 왕산악이 6줄로 변형하여 만든 우리 고유의 악기이다. 아랫판은 밤나무, 윗판은 오동나무를 사용하고, 그 위에 명주실 6줄을 튕겨서 소리내는 현악기이다. '현금(玄琴)'이라 불리다가 '거문고'로 이름한 것이라 추정된다. 현금(玄琴, 검은색 금)이라 불리워진 것으로 보아 왕산악이 꼬리 쪽을 불로 그슬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줄만 7줄에서 6줄로 바꾼다고 새로운 악기라고 하기에는 큰 변화는 아니다. 꼬리를 불로 그슬려서 음색을 획기적으로 변화 시켰기에 새로운 악기로 인정 받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絲桐(사동) ~ 거문고를 달리 이르는 별명. '실 묶은(絲) 오동나무(桐)'라는 뜻이다. 오동나무에 맨 명주실을 튕겨서 소리를 낸다.
焦尾(초미) ~ 거문고를 달리 이르는 별명. '꼬리(尾) 쪽을 불로 그슬렸다(焦)'는 뜻이다. 꼬리쪽을 불로 그슬르는 이유는 음색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焦尾(초미) ~ 거문고를 달리 이르는 별명. '꼬리(尾) 쪽을 불로 그슬렸다(焦)'는 뜻이다. 꼬리쪽을 불로 그슬르는 이유는 음색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 '絲桐' 과 '焦尾' 비교 ~ '거문고'라는 순한글 이름을 두고도 한자 표기하기 위해 별명을 지었을 거라고 추정된다. 보통 별명을 부를때 한쪽의 특징을 과장해서 부르는 경우가 있다. 예를들어 '눈이 큰 아이=왕눈이' 또는 '다리 긴 아이=꺽다리' 등으로 호칭 하기도 한다.
거문고라는 정상적인 이름을 두고도 '絲桐(오동나무에 실 묶은 것)'이라는 별명을 지었고, '焦尾(꼬리를 불로 그슬린 것)'라는 별명을 지은 것이다. 똑같은 거문고이지만 소리를 생성하는 부분의 측면에서의 별명인 '사동(絲桐)'과 음색을 변화시킨 측면에서의 별명인 '초미(焦尾)'로 달리 불렀던 것이다. 같은 1사람이라도 별명이 여러개 일수 있는 것과 같다.
실제는 '사동(絲桐)=거문고' 이고, '초미(焦尾)=거문고' 이지만, 문맥상으로 '사동(絲桐)+초미(焦尾)=거문고' 라는 의미로 지은이가 사용하였다.
革援(혁원) ~ 중국 후한시대 때 '裹革之尸(과혁지시 : 전쟁에서 싸우다 죽으면 말가죽으로 시체를 싸서 돌아온다는 뜻)를 말한 馬援(마원:後漢 光武帝 때의 명장)'을 줄여서 '혁원(革援)'이라 하셨다. 마원은 늙어서도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서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노익장(老益壯)'의 어원(語源)이 될 만큼 전쟁에 집착이 많았다.
瓮畢(옹필) ~ 畢卓(필탁)은 중국 진나라 사람으로, 술 마시는 것이 그의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었기에 술항아리(瓮)를 항상 끼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술항아리(瓮) 끼고 살아가는 필탁(畢卓)'를 줄여서 '옹필(瓮畢)'이라 칭한 것이다.
# 革援(혁원) 과 瓮畢(옹필) ~ 집착(革)+사람, 집착+사람(28宿중 하나) 구조를 만들려면 해당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8음의 일반적 순서 그대로 싯구절 첫글자로 삼았기에 '혁(革)'은 고정되어 바꿀수 없는 글자이고 나머지 1글자는 '가죽'하면 연상될수 있는 집착이 강한 사람으로 '마원'이를 선택하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28수에 해당하는 글자를 가진 사람 중에 필탁(畢卓)이가 술항아리에 집착한 것을 앞서와 같이 '말가죽 집착+마원' 처럼 '술항아리 집착+필탁' 형식으로 표현하신 것으로 추정된다.
마원과 필탁, 두 사람 이름은 상제님 계셨던 당시 조선 지식인들에게는 좀 알려져 있던 특이한 중국 사람이었기에 그 이름을 가져와서 쓰신 것으로 보여진다.
養頤(양이) ~ '양(養)'은 '봉양(奉養)하다'는 의미이고, '이(頤)'는 '기르다'라는 의미이다. 즉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기른다' 라는 뜻이다. '養頤(양이)'는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이다. 그냥 '養+頤(서로 반대되는 글자 조합)'라고 보면 된다. '이(頤)'는 64괘 중의 하나로서 '턱'이라는 괘상을 가지며, 턱을 움직여 음식을 씹어서 몸을 기르기에 '기르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양(養)'은 '부모를 봉양한다'는 뜻이기에 이와 댓구되는 뜻으로 '頤(이)'는 '자식을 기르다'는 의미로 한정하는 것이 문맥에 자연스럽다.
[분석]
** 1째 글자 : 金,石,絲,竹,匏,土,革,木 ~ '8음(音)'에 해당한다. 악기는 재료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므로 이를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팔음을 일반적인 순서 그대로 시의 첫번째 글자에 나열하여 '운자(韻字)' 삼아서 지은 것이다.
** 4째 글자 : 房,壁,尾,心,星,柳,畢,牛 ~ '28수(宿)' 중 하나씩 골라서 4번째 같은 위치에서 멋지게 대비하여 놓았다.
** 7째 글자 : 旅,師,解,離,履,隨,益,頤 ~ '64괘(卦)'중 하나씩 뽑아서 각 구절 7번째에 사용한것 뿐만 아니라 2구절의 '師[shī]'와 6구절의 '隨[suí] '를 비슷한 발음으로 운율을 맞추었고 4구절에서 '離[lí]' 와 8구절에서 '頤[yí]' 의 사성(四聲) 운율을 완벽하게 맞춤은 너무나 절묘하다고 할수 있다.
64괘중 하나를 골라 4구절, 8구절 끝에 맞추는 것도 어려운데, 사성(四聲)까지 맞추려면 4구절끝 한글자를 선택하면 8구절끝은 사성이 같은 것(64/4=8)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므로 나머지 7개의 글자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조합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불가능하다. 상제님의 권능(權能)으로 만드신 한시(漢詩)라는 증거이다.
**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한정된 글자인 8음과 28수와 64괘만 가지고서 문맥을 연결하면서도 운율까지 맞추면서 시를 쓴데 대하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1, 4, 7 째 자리에 배치하는 것은 천지 이치에 통달(通達)하지 않으면 이러한 글을 지을수 없다고 보여진다.
* 증산상제님께서 8음과 28수와 64괘의 의미를 완전히 그대로 살려서 지었다면 음악(音樂, 8음), 천문(天門, 28수) 그리고 주역(周易,64괘) 3가지 모두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해석할수 없을 것이기에 알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불평등한 한시(漢詩)를 지으셨을 리가 없다.
8음, 28수, 64괘에 대하여 조금 아는 척 하고픈 사람들이 억지로 28수, 64괘상(卦象)을 싯구절에 적용하여 해석하는데, 그럴거라면 8음 또한 의미를 완전히 살려서 해석해야 한다. 본인이 마음대로 취사(取捨) 선택하면 안된다.
앞뒤의 말이 이어지지 않은 해석을 해 놓고는, 비결(秘訣)이기에 번역해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속이는 사기꾼이다. 한문을 한글로 번역했는데 한국인이 보아서 무슨 말인지 두서(頭緖)를 알수 없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상제님 말씀에 다가가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해석 가능하지만, 상제님 뜻을 버리고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은 해석하기 불가능하도록 만드신 싯구절이다.
자신이 속한 종단에서 세뇌되어진 선입견을 비우고 또 비워야 비로소 상제님 생각에 다가갈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아서는 해석 할 수 없으며 상제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상제님께서는 한자(漢字) 그대로 해석하도록 지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8음과 28수와 64괘 글자 모두 다 한자(漢字) 그대로의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8음과 28수와 64괘를 전혀 몰라도 해석가능하다. 그래야 공평하다. 상제님은 그러한 분이시다.
** 내용상 2구절씩 기승전결(起承轉結)로 이루어져 있다.
즉 1과2는 '기(起)', 3과4는 '승(承)', 5와6은 '전(轉)' 7과8은 '결(結)'이며 한시에서는 당연한 구조이다.
또한 1,3,5,7구절은 부정(근심,절망)을 담고 2,4,6,8구절은 긍정(안심,희망)을 담고 있다.
즉 걱정거리를 주어 애태웠다가(1.3.5.7) 다음 구절에서 바로 풀어내는(2,4,6,8) 형식으로 시를 지음으로 해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시상(詩想)으로 끌어들이면서 5,6구절에서 감정의 최고조에 이르게 하면서 이 싯구절의 주제를 담고 있으며 7,8구절에 교훈을 남기면서 끝맺음하고 있다. 한시의 전형적인 구조이다.
또한 희노애락 중에 앞구절(1,3,5,7)은 노(怒, 화냄)와 애(哀. 슬픔)의 감정을 주로 자극하고, 뒷구절(2,4,6,8)은 희(喜. 기쁨)와 락(樂, 즐거움)의 감정을 주로 자극하고 있으며 이러한 형식이 4차례나 반복된다.
** 모든 싯구절은 'ㅇㅇㅇㅇ(주어절)+ㅇ(동사)+ㅇㅇ(보어)형식으로 되어 있다.
** 모든 싯구절은 'ㅇㅇㅇㅇ(주어절)+ㅇ(동사)+ㅇㅇ(보어)형식으로 되어 있다.
즉, 5째 글자가 동사인 것이다. 모두 다 그렇다. 해석의 핵심이다.
그리고 2구절씩 서로 대비되어 있다. 즉 '金屋瓊房'과 '石門苔壁'이 대비되며, '視'와 '儉'이 대비되고, '逆旅'와 '爲師'가 서로 대비된다.
이러한 형식을 전체적인 싯구절에 적용하여 해석하여야 한다.
즉 각 단어들의 정확한 뜻은 댓구하는 글자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한시(漢詩) 해석의 기본인 것이다. 왜 하필 이 글자를 쓰셨는지는 대비되는 글자를 보면 알수 있다.
코미디에서 반전이 웃음을 유발하듯이, 한시에서는 하나의 이미지를 주고 반대되는 이미지를 대비하면서 반전으로 인해 희노애락 감정을 자극하는 구조이다. 반드시 댓구하는 구절과 비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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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屋瓊房 視逆旅 石門苔壁 儉爲師(금옥경방 시역려 석문태벽 검위사) :
5번째 글자를 동사로 하여 직역하면 '금옥경방(金屋瓊房)에는 역려(逆旅)가 보이고(視), 석문태벽(石門苔壁)에는 위사(爲師)가 적다(儉)'가 된다.
'金屋瓊房(금옥경방)'과 '石門苔壁(석문태벽)'이 완벽하게 대비가 되는 글자들이다.
'金屋瓊房'은 '金屋(금옥)'과 '瓊房(경방)'이 같은 문구 내에서 댓구하고, 뜻은 '외부는 금으로 치장하고 내부는 옥으로 치장한 건축물(=화려, 부유)'이며, '石門苔壁'은 '石門(석문)'과 '苔壁(태벽)이 댓구하고, 뜻은 '돌로 만든 대문, 이끼 낀 담벼락(=소박, 빈한)' 이다.
'屋'과 '房'이 각각 가옥 외부와 내부를 가리키는 말이고 '門'은 '열린 경계'이고 '壁'은 '닫힌 경계' 이다. 여기에 '금(金)', '경(瓊)' 은 사치이고, '석(石)', '태(苔)'는 검소와 관련 있다.
'금옥(金屋)' 이라는 단어를 단독으로 쓰는 것 보다 '경방(瓊房)' , '석문(石門)' , '태벽(苔壁)' 과 같이 나열함으로 인해서, '경방(瓊房)' 아니고, '석문(石門)' 아니고, '태벽(苔壁)' 아닌 것이 '금옥(金屋)' 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서로 대비되면서 '금옥(金屋)'의 이미지를 4배 증폭하고 있다. 서로서로가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4개의 단어, 각구절 7개의 글자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 설켜서, 적재적소에 꼭맞는 글자를 퍼즐의 조각처럼 맞추고 있다. 여기에다가 반전에 반전을 더함으로써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형성하고 있다. 비빔밥 속에는 다른 맛의 다양한 재료들이 서로 어울려서 풍미를 더하듯이, 이들 단어들 또한 상생(相生)하면서 어우러진다. 이후의 다른 구절도 이와 마찬가지 구조로 글자를 분석해야 한다
이 중에 '금(金)', '석(石)'은 8음을 원래 순서대로 운자(韻字) 삼아서 지은 글이라서 다른 글자로 대체할 수가 없다. 또한 '방(房)', '벽(壁)'은 24수에 해당하는 글자이다. 8음과 28수와 64괘가 세로로 엮고 있고, 옥(屋), 방(房), 문(門), 벽(壁)은 시(詩)의 가로를 엮고 있으면서 각각 집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5번째 글자는 동사이며, '視'는 '보이다(=不儉, 숫자가 적지 않아서 잘 보인다)'이며, '儉'은 '적다(=不視, 숫자가 적어서 잘 안보인다)'이다. 이처럼 동사도 서로 댓구하도록 해석해야 한다. 그 이유는, 한시 글자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덜 중요한 글자는 빼게 되지만 댓구하는 글자를 통해 빠진 의미를 서로 보완하는 것이 보통이다.
댓구하는 '려(旅)'와 '사(師)' 두 글자 모두 64쾌에 속하면서 동시에 군사용어이다. '려(旅)'는 '무리려'이고 '사(師)' 또한 '무리사'이며, '려(旅)'는 '작은 무리(=시야가 좁은 무리)'이고 '사(師)'는 '큰 무리(=시야가 넓은 무리)'로 서로 댓구하도록 해석해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므로, '逆旅'와 '爲師' 는 각각 '거스르는 무리'와 '위하는 무리'라고 해석함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더우기 '금옥경방'과 '석문태벽'은 '건축물'이고 '역려'와 '위사'는 '사람들' 이라는 서로 반대 이미지를 대비시켜 놓았다.
전체를 의역하면 '아주 화려한 집(=金屋瓊房)에는 반역의 무리들이 많이 모여 있고, 아주 소박한 집(=石門苔壁)에는 충성스러운 무리들이 적게 모여 있다'는 뜻이 된다. 화가(畵家)는 사과를 그리더라도 자신의 감성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처럼, 이렇게 단순한 문장에다가 적절한 한자를 배합하여 강렬한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 더우기 8음, 28수, 64괘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도 절묘하게 녹아 들어가 있다.
<참고> 여,려(旅), 사(師) ~ 중국(中國) 주(周)나라(기원전1046~기원전256년) 때, 군사집단 500명을 1여(旅)라고 하였고, 5여(旅)를 1사(師)로 하고, 5사(師)를 1군(軍)으로 했다. 즉 1旅는 500명, 1師는 2500명, 1軍은 12500명 군사에 해당한다.
중국 고대의 이러한 편재는 오늘날까지도 큰 틀은 유지되면서,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숫자는 다르지만 이러한 편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즉, 대한민국 군대 체계가 '여단(旅團)'과 '사단(師團)'과 '군단(軍團)'으로 되어있다.
괘이름인 동시에 군사용어인 '旅(려)'와 '師(사)'를 대비함은 놀랄만한 식견이다. 그러나 해석에 있어서 군사용어나 괘이름과는 전혀 무관하다. 따라서 둘다 '무리(또는 집단)'로 해석하면 무방하다고 본다. 여(旅), 사(師)가 댓구하도록 해석해야하기 때문에 당연히 상제님께서도 이러한 개념을 염두에 두시고 쓰셨음이 틀림없다.
여(旅)가 '나그네'이고 사(師)가 '스승' 이라는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서로 대비되는 의미가 아닐 뿐만 아니라 앞뒤 문맥이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해석을 할수가 없다. 이유는 상제님께서 이 한시(漢詩)를 지으실때 의도하신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상제님께서 려(旅), 사(師)의 개념이 현대에 오면서 변할 것을 예측 못하셨리 없다. 상제님을 진정으로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상제님 말씀을 자의(自意)적이며, 편협(偏狹)한 관점을 가지고 해석할 것이기에, 이러한 수도인들은 현대적(現代的)인 '나그네, 스승' 이라는 해석을 하도록 유도(誘導) 하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불순(不純)함을 스스로 자백(自白)하게 하려는 의도였으리라 짐작한다.
< '여(旅,무리려)' 의 의미 심층 고찰 > 사서삼경(四書三經)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사서오경(四書五經)에 포함되는 '예기(禮記)'라는 책에 '여진여퇴(旅進旅退)'란 말이 있다. '무리지어 나아가고 무리지어 물러난다 즉 줏대없이 떼로 몰려다닌다'는 말이다. 유교나라 조선 지식인이라면 유교경전에 쓰여 있는 '旅'가 '무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모를리 없다고 추측된다.
조선시대에서는 '거처를 옮겨다니는 무리 즉 이동하는 집단' 이라는 것이 원래 의미였으나, 현대에 오면서 '거처를 옮겨다니는 사람 즉 이동하는 사람(=나그네)'로 의미가 축소되어 버렸다고 보여진다.
현대에 변형되어 쓰이는 의미를 가지고 과거의 글을 해석하려 하면 안된다. 상제님께서도 당연히 여(旅)는 '무리려' 라는 의미로 쓰신 것이다.
< '사(師,무리사)' 의 의미 심층 고찰 > 중국(中國) 주(周)나라 때부터, 사(師)는 군사 용어로 쓰였였다. 현대 대부분 국가의 군인들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旅團)에 속하면서 사단(師團)의 지휘를 받고 있다. 별을 달아야 사단장이 되고 '장군'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사단장(師團長) 계급은 대체로 소장(☆☆)이며 사단직할 여단장(旅團長)은 대령(***)이 맡고 있다. 사단장은 광역부시장, 부지사와 같은 1급공무원이다.
진정한 지휘관은 사단장이다. 이러한 위상은 과거에도 동일했으리라 추정된다. 이러한 군대 용어인 사(師)가 사회에서도 쓰게 되면서 '나에게 명령을 내리고 지시할수 있는 장군과 같은 권위를 가진 사회 사람' 즉, '스승'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현대에도 군사용어가 사회용어로 변형되어서 사용되는 것은 아주 흔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師)는 '스승'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그러나 상제님 재세시 유교사회인 조선시대 때 쓰던 한문의 의미를 현대에 변형된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지금은 의사(醫師). 간호사(看護師) 등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싶은 집단들이 무분별 하게 가져다 쓰고 있다.
* 絲桐蕉尾 誰能解 竹管絃心 自不離(사동초미 수능해 죽관현심 자불리) :
먼저 5번째 글자인 '誰'는 '누구인가?'이며 '自'는 '저절로 되다'라는 동사로 해석하여야 한다. 직역하면 '사동과 초미는 능해를 누가하겠는가? 죽관과 현심은 불리가 저절로 되네!'라고 할수 있다.
'絲桐蕉尾'와 '竹管絃心'이 대비되고 '能解'와 '不離'가 대비된다.
'絲桐蕉尾'는 하나의 거문고 내의 2부분인 '사동부분(=실묶인 오동나무, 소리를 生成하는 몸체부분)'과 '초미부분(=오동나무 끝자락, 소리를 變成하는 울림부분, 음색을 변조하거나 증폭하는 부분)'으로 구분해 볼수는 있지만 둘다 있어야 거문고 소리가 나기에 나눌수 없다는 뜻이다.
'竹管絃心'은 '죽관악기(竹管樂器 =대금, 피리 등)와 현악기(絃樂器 =거문고, 가야금 등)'라고 볼수 있겠다. 죽관악기와 거문고는 완전히 다른 악기이지만 하나의 음악을 연주함에 있어서는 소리가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문맥상 '竹管心+絃心' 이지만 4글자를 맞추기 위해서 앞의 心을 생략한 것으로 보여진다.
'絃(현)'은 현악기 즉, 가야금 또는 거문고 등 줄을 뜯고 튕기거나 해금처럼 활로 켜는 악기를 통칭하는 글자이다. '絃心(현심)'이라 표현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心'은 '28수'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사용하였지만 '絃心(줄의 마음)'은 '絃體'와 반대말로 '거문고 형체'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거문고의 기능(=소리)'을 상징하고 있다.
'能解(능해)'의 '能(능)' 과 '不離(불리)'의 '不(불)'은 서로 댓구하도록 해석해야 한다. 즉 '能(능)'은 '可能(가능)'이고, '不(불)'은 '不能(불능)'의 준말이라 해석함이 타당하다. 따라서 '能解(능해)'는 '분해(分解) 가능(可能) 즉, 서로 떨어트림이 가능함'이고, '不離(불리)'는 '이별(離別)하지 못함(不能) 즉, 서로 떨어지지 아니함' 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사동과 초미'는 형태가 하나이지만 '죽관과 현심'은 같은 음악을 합주하면서 소리내는 기능이 어우러져서 하나가 된다. 여기에다가 앞구절은 '근심'이요 뒤구절은 '안심'의 감정을 실어서 의역하면 '거문고에서 몸통과 울림통을 따로 뗄수 없이 한몸인 것은 안타깝게도 어쩔수 없지만, 완전히 달라보이는 거문고와 죽관악기도 같은 음악을 연주하면서 서로 하나가 되어서 저절로 어울리는구나' 라는 뜻이 된다.
그룹사운드에서 기타, 베이스기타, 드럼, 오르간이 합주했을 때, 꽉찬 사운드 감흥을 느끼게 된다. 죽관악기는 전자오르간과 비슷하고, 거문고는 기타와 비슷하다. 현악기는 퉁겨서 소리내는 순간 음량이 크지만 패이드 아웃 되는데 반해, 관악기는 소리가 연속된다. 즉 관악기가 오르간 처럼 전체 음악의 밑바닥을 깔고 있으면서, 그 바탕 위에서 거문고 소리가 박자에 맞추어 놀게 된다. 이처럼 거문고와 죽관악기도 어울려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음악연주가 된다는 의미이다.
* 匏落曉星 霜可履 土墻春柳 日相隨(포락효성 상가리 토담춘류 일상수) :
여기에서 5번째 글자인 '霜'은 '서리있다(=서리내리다)'이고 '日'은 '햇볕있다(=햇볕들다, 햇볕내린다)'라는 동사이다. 직역을 하면 '포락효성에는 가복(=밟을수 있음, 덮을수 있음)하는 서리내렸고 토담춘류에는 상수(=서로 따라다님)하는 햇볕내린다' 라는 뜻이다.
포락(匏落)은 '박이 떨어짐'이고, 효성(曉星)은 '새벽별 즉 새벽에 뜨는 금성'이고 토장(土墻)은 '흙 담장'이고 춘류(春柳)는 '봄철의 버들'이다. '可履'은 '밟을 수 있음'이고 '相隨'는 '서로 따름'이다. 둘다 보어로 해석해야 함은 당연하다.
의역하면 '새벽에 떨어진 박에는 (이불을 덮듯) 박덩굴 전부를 덮는(=可履) 서리가 내려 있고, 흙담집과 근처에 있는 봄버들에는 마치 햇볕이 이 집과 버드나무를 서로 따라다니는 듯(=相隨) 환하게 비추는구나'라는 뜻이 된다.
'相隨(상수)'는 '서로가 따른다'는 뜻이다. 해(日)가 토담춘류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토담춘류 또한 해(日)를 향해서 서로서로(相) 따라 다닌다(隨)는 뜻이다.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연인 사이에 서로서로 이끌림이 생기듯이 서로서로가 따른다는 의미이다.
* 革援瓮畢 有何益 木耜耕牛 宜養頤(혁원옹필 유하익 목사경우 의양이) :
5번째 글자인 '有(있을유)'와 '宜(마땅의)'를 동사로 해서 직역하면 '혁원과 옹필은 하익이 있으리오 목사와 경우 가지고서 양의함이 마땅하다'이다.
혁원과 옹필의 이름을 쓴 연유는, 8음 중 '혁(革)'과 28수 중 '필(畢)'에 해당하면서 집착이 심했던 과거인물이었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터에 나가서 싸울 궁리(裹革之尸)에만 집착하는 '馬援(마원)'과 술항아리(瓮)만 끼고사는 '畢卓(필탁)'의 공통점은 '한가지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하익(何益)'은 '어떤 이익'이며, '목사(木耜)'는 '나무 보습'이다 '보습'은 쟁기의 가장 핵심 기능인 땅을 직접 갈아엎는 부분을 일컫는 단어이다. '자동차'라는 표현보다 '자동차 바퀴'라 표현하면 바퀴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연상되듯, '나무 쟁기'라 표현하는 것보다 '나무 보습'이라 표현하는 것이 쟁기의 모양(靜)이 아니라 밭 가는 기능(動)에 촛점을 두면서 더더욱 역동적이고 강렬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표현이다. '경우(耕牛)'는 '밭가는 소'이다. '양이(養頤)'는 '봉양하고 기른다'는 뜻이다. '宜(마땅의)'는 '마땅하다, 마땅히~하여야 한다'는 우리말 표현에 가깝다
앞은 '근심' 뒤는 '안심'의 감정을 대입하여 의역하면 '늙었어도 전쟁 밖에 모르던 마원이와 술항아리만 끼고 살던 필탁이는 둘다 집착이 심했으므로 쓸데없다. (집착하는 마음은 버리고) 나무쟁기와 밭가는 소를 가지고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 것을 벌어서),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이다.
[해석]
화려하게 지은 건물에는 윗분을 거스르는 무리들이 가득하고
소박하게 지은 건물에는 윗분을 받드는 무리들이 많이 없구나
사동과 초미를 분리할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관악기 소리와 현악기 소리는 같은 음악을 합주하면서 하나가 되는구나
새벽에 박이 떨어지고 박덩쿨에는 서리가 내려 덮고 있지만
흙담과 옆에 있는 봄버들에는 햇볕이 내려 쪼이는구나
마원, 필탁 같은 쓸데없는 집착이 무슨 소용있으리
나무쟁기 끄는 소를 이용해서 농사지어서,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을 길러내는 것이 마땅하도다
[해설]
한자 단어가 조금 어려워서 그렇지 5번째 글자가 동사라는 것만 유념하면
어려운 부분 없이 물 흐르듯이 해석이 된다.
언뜻 보기에
아주 낭만적인 감성을 가득 담은 한시(漢詩)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천상제님께서
이런 정도의 낭만적 감성을 표현하시기 위해서
한가로이 시를 지은 것이 아니다.
8음(地), 28수(天), 64괘(人)까지 사용하신 것은
그만큼 글자 하나하나 심사숙고하여 쓴 것임을 내보이시기 위함이고
또한 중요한 싯구절임을 암시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은유(隱喩)가 많아서
여전히 상제님 진의를 알기가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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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수께끼 같은
싯구절 속에 숨겨 놓으신 진정한 뜻을 찾는 실마리는
전제되는 말씀 속에 숨겨 두셨다.
첫번째 27년 헛도수(虛度數)가 있고,
전제되는 말씀 속에 숨겨 두셨다.
첫번째 27년 헛도수(虛度數)가 있고,
두번째 불가지(佛可止)에서 가활만인(可活萬人) 이후에
세번째로 이상의 싯구절이 현실에서 나타난다는 것이
구천상제님께서 진정 남겨 주고 싶은 뜻이시다.
(대순전경11판4:160,161 / 무극진경9:68,69 / 전경예시53,54절)
증산상제님을 따르는 어떠한 종단에서도, '27년 헛도수' 이후에 '불가지' 있고 '가활만인'이 이어지는 것에 대하여 '금옥경방시역려'를 연관 지울수 있는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단체는 없었다. 그렇지만 증산상제님을 모시는 모든 종단을 통털어서 볼때 오로지 하나의 경우에만 너무나 딱 맞는다.
증산상제님을 따르는 어떠한 종단에서도, '27년 헛도수' 이후에 '불가지' 있고 '가활만인'이 이어지는 것에 대하여 '금옥경방시역려'를 연관 지울수 있는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단체는 없었다. 그렇지만 증산상제님을 모시는 모든 종단을 통털어서 볼때 오로지 하나의 경우에만 너무나 딱 맞는다.
즉 조정산 도주님께서 선화(1958년)하시고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계승 받으신 박우당 도전님께서 대두목을 문서로 공식 선포(1985년 전경에 '後人山鳥皆有報 勸君凡事莫怨天' 추가)할때까지 27년 동안(1958년~1985년)은 진법주가 '서가여래 하감지위'라서 완성이 안되었기에 '헛도수' 이다.
이후 '불가지'라 함은, 대두목(後人山鳥)의 주도 하에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던 위치에서 내리고, 그 자리에 도전님을 모시면서 '서가여래 하감지위'를 그만(佛可止)하고 '[도전님 신명이름] 하감지위'로 진법주가 바뀌는 과정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그 원년(元年)이 1985년이다.
석가모니를 내리고 박우당 도전님을 그 자리에 모시려고 하니까 대다수가 반대했지만, 도전님은 석가모니의 현신(現身)이기에 석가모니 자리에 도전님을 모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대두목의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진법주에서 구천상제 자리에 증산 상제님께서 가시고, 옥황상제 자리에 정산 상제님 가시고, 석가모니 자리에 우당 상제님 가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것이 종통이고 구천상제님 공사이시다. 이를 도전님 생전에 받든 유일한 사람이 대두목이다.
대두목에 의해서 연원(淵源)이 바로 세워지고, '가활만인(=만인을 살리는 것이 가능함)'의 천지대도의 기운(=종통)이 대두목에게 계승되게끔 구천상제님께서 천지공사 하신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바로 이 싯구절이다
***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전체의 싯구절을 다시 살펴보면, 구천상제님께서 드러내지 않으시고 은유(隱喩)로 살짝 숨겨두셨던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나게 된다.
* 金屋瓊房 視逆旅 石門苔壁 儉爲師(금옥경방 시역려 석문태벽 검위사) :
대순진리회 도장(道場) 건축물이 바로 금옥경방 아니던가
그 속에 모여 있는 무리들이 바로 '서가여래 하감지위'라 외우며 서가여래를 모시면서도 도전님을 모시지 않는 역도 무리(=逆旅)들인 것이다.
석문태벽은 대두목을 따라 우당 상제님을 받드는 무리들은 초라한 건물에서 빈한(貧寒)하게 지내면서, 호응(互應)하여 모여드는 사람들도 적을 것임을 예언하신 것이다.
도전님께서 태극도를 벗어나서 대순진리회를 창설할때 태극도에 남아 있던 수도인과 도전님 따라 나온 수도인의 처지와 비슷하다.
1985년 대두목이 누군지 선포하셨으면 대두목을 중심으로 모여서 함께 도전님을 받들어야 하는데(=爲師), 오히려 대두목을 따르기는 커녕, 무시하고 배제시킨 사람들이 '역모 무리(=逆旅)'인 것이다.
* 絲桐蕉尾 誰能解 竹管絃心 自不離(사동초미 수능해 죽관현심 자불리) :
사동과 초미는 대순진리회에서 선후각 인간관계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꽉 얽혀 있어서 쉽게 분리할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며, 부정적인 의미로 쓰신 것이다.
비록 겉모습은 달라도 마음만 같다면 하나가 될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진정코 상제님을 모신다는 도전님과 또한 진정코 상제님을 모신다는 대두목의 마음이 하나이므로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판밖에서 오히려 구천상제님을 따르는 진정한 종단을 찾으라는 암시를 주신 것이 것이 죽관과 현심인 것이다.
'竹管(죽관)'은 죽산 박씨(竹山 朴氏)로 오신 박한경 도전님을 상징하고, '현심(絃 = 糹+ 玄 / 糹=종통의 끈, 玄=道)'인 대두목을 상징하고 있다.
* 匏落曉星 霜可履 土墻春柳 日相隨(포락효성 상가리 토장춘류 일상수) :
'박(匏)이 떨어진 곳'은 같은 음(音)인 '박(朴)'씨 성으로 오신 박우당 도전님의 선화(仙化)를 은유하고, 이후에 대순진리회 속에서는 서리가 덮듯 고난과 시련뿐이면서 아무런 희망없이 추위에 떨고 지내는 모습을 눈에 선하게 표현하고 있다. 도전님께서 태극도를 벗어났지만 그곳에 여전히 남아 있던 수도인들과 똑같은 처지인 것이다. 박(匏)덩굴에 가복(可履)하는 서리내렸다함은 도전님(匏)과 연줄로 얽혀 있는 모든 대순진리회 수도인에게 서리내린다는 말씀이다. 즉 도전님께서 선화하시면 즉시 박덩쿨과 연결이 끊어져야만 서리 맞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曉星(효성)은 '샛별, 금성(金星)'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금성은 해뜨기 직전에 동쪽하늘에 보이거나 해가 진 직후에 서쪽하늘에 나타나는 별이다. '曉(새벽효)'이기에 '새벽에 동쪽 방향에 나타난 금성'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대순진리회는 새벽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별빛 뿐이며 햇빛은 없다. 또한 동쪽에 나타날 해(日)에 대하여 길잡이 역할만을 할뿐, 해가 뜨면 사라지는 운명인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 '효성(曉星)'이다. 포락효성(匏落曉星)은 '아침이 오기 직전인 새벽에 도전님께서 선화하신다'는 것이다. 대순진리회에는 햇빛은 내리지 않고 서리만 내린다(霜可履)는 의미이다. 또한 새벽에 박(匏)이 떨어지므로 도전님께서 선화하셔야만 이어서 아침해가 뜬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흙담 옆에 있는 봄버들에는 햇볕이 따사로이 쪼이고 있다는 것은 대순에서는 절망이지만 판밖에서는 상제님의 기운이 가득히 내려오는 대두목 종단이 따로 판밖에 있음을 알려 주시고 있다. 그것도 해(日)가 토담춘류를 따르기도 하지만 토담춘류 또한 해(日)를 따른다는 의미를 '相隨(상수-서로가 따름)'라는 단어에 함축해서 모두 담고 있다. 대두목이 상제님 받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제님께서도 대두목에게 천강을 내리고 계신다는 의미가 '相隨(상수)'이다.
기승전결의 '전'에 해당되는 핵심 내용이 이 구절이며 주제가 담겨 있으며, 시(詩) 전체의 핵심 단어가 '相隨(상수)'이다. 모든 단어들은 '相隨(상수)'를 위한 레드 카펫이다.
'匏落曉星'은 밤, '霜可履'은 '가을' 이고 '土墻春柳'는 '봄'이며 '日相隨'는 '낮'으로 서로 교차하면서 의미상의 댓구를 이루고 있다. 앞구절의 밤과 가을은 쓸쓸함, 절망, 생명력이 사라짐을 나타내고, 뒷구절의 낮과 봄은 따스함, 희망, 생명력이 자라남을 상징한다. 철저하게 앞과 뒤를 반대의 이미지로 대비한 문장이다.
도전님 선화 후에도 대순진리회에 남아 있으면 절망 뿐이니, 종통을 계승하고 있는 판밖의 새로운 종단을 찾으라는 천명(天命)이 담겨 있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보고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면 어찌 상제님 수도인이라고 할수 있으리오.
* 革援瓮畢 有何益 木耜耕牛 宜養頤(혁원옹필 유하익 목사경우 의양이) :
* 革援瓮畢 有何益 木耜耕牛 宜養頤(혁원옹필 유하익 목사경우 의양이) :
마원과 필탁을 예로 드신 것은 둘다 한가지에만 집착해서 죽을때까지 외길만을 가는 대표적인 사람을 언급하신 것이다. 기존에 생활해 오던 그 고집스러운 습관 때문에 계속 대순진리회의 끈을 놓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표현한 것이다. 당연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신 것이다.
종통이 없는 대순진리회에서 수도하고 있는 것은 무위도식(無爲徒食)일 뿐이니, 차라리 사농공상(士農工商)에 종사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이 바로 '농사짓는 것'에 대한 의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직업 중 농사를 대표로 하신 연유는 자연에 순응해야 거둘것이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농사 지으며 살라는 것은 역천(逆天)하지말고 순천(順天)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또한 뿌린만큼만 거둘수 있기에 욕심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박우당 도전님 선화하시고, 종통을 계승한 대두목 마저 빠져나가 버리고 없는 대순진리회 종단에서 소일(消日)만 할 바에는, 종단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차라리 밥벌이라도 하면서 가정을 돌보는 게 올바른 처사(處事)라고 가르침을 주시는 말씀이다.
*****
1,3,5,7구절은 절망의 대순진리회를 모습을 그리고 있고, 2,4,6,8구절은 희망 가득한 판밖의 대두목 종단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놓으신 예언시이다.
'27년 헛도수' 이후에 '불가지' 이면서 '대두목' 출현할 거라는 구천상제님의 예언시이다.
다시말해서 대순진리회에서 대두목이 출현할 것이라는 것이 요지이다.
1,2 구절은 1985년을 설명
[전경에 대두목 선포했으나 따르는 사람 적음]
3,4 구절은 1986~1994년 설명
[선후각 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대두목 따르는 것이 중요함]
5,6 구절은 1995년을 설명
[도전님 선화 후에 대순진리회 내에서는 절망 뿐이지만,
판밖으로 나가신 대두목에게 천강(=天降)이 내려 옴]
7,8 구절은 1996년 이후를 설명
[대순진리회에서 인생 허비 말고
차라리 밥벌이나 하면서 가정을 돌보는 것이 낫다]
박우당 도전님 재세시에는 대순진리회에 정통성이 있지만, 27년 지나면서부터(1985년) 대두목의 주도하에 서가여래 자리에 도전님을 모시기 위한 일들이 시작되고, 동시에 대두목에게 종통이 계승 될 것이다. 이렇게 천지공사 하신 것에 대하여 구천상제님께서 시(詩) 형식을 빌려서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증산상제님의 종통이 정산상제님을 거쳐서 박우당 도전님에게로 이어졌고, 27년 지나서 대두목에게로 종통이 전해짐을 인정한다면, 한글자도 빠트림 없이 완벽하게 해석해 낼수 있다
태극도에서 종통을 받으신 도전님께서도 도주님 선화 후에는 판밖에서 새로운 대순진리회를 여셨듯, 대순진리회 도전님께서 선화하신 후에는 대두목이 새로운 종단을 만드는 것이 순리이다.
대부분의 종단에서 앞뒤 문맥 안 맞는 말로 얼토당토 않는 해석을 하거나, 어려운 주역 이론을 끌어다 붙여서 감히 반박하지 못하게 하거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 비결(秘訣)라 수도인들을 속이고 있다. 그들은 개벽이 올때까지도 결단코 해석 못해낼 것이다.
난법난도하는 자들이 자신의 경전에 뜻 모를 이 싯구를 실으면서도 후대까지 전해지게 하려는 그것이 구천상제님 뜻이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자신의 경전에는 있되 해석은 못하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말로 앞뒤 이어지지 않는 해석을 하는 모든 종단은 모두 사이비(似而非-비슷한데 옳지 않음)임을 자인(自認)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종단은 정통성이 없음도 자백(自白)하고 있다. 증산상제님의 다른 말씀을 모두다 해석 한다해도 이 '금옥경방시역려' 한시(漢詩)를 해석 못한다면 사라져야할 종단인 것이다. 그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을 '面分雖舊心生新 (면분수구심생신)' 에 담으셨다.
***
1985년 종통계승과 동시에 도전님께서 선화하셨다면, 대두목은 대순진리회를 벗어나서 새로운 종단을 바로 여셨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대순진리회에 남아 있는 수도인들은 대두목에 대해 보고 듣는 것이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1985년부터 1995년까지 대두목이 대순진리회 내에서 수도인들이 보는 앞에서 수많은 천지공사를 받들었기에 내부가 떠들썩한 일도 허다했다. 이러한 떠들썩한 사건들을 통해서 도전님께서 대두목이 누구인지 수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배려를 하신 것이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다가, 1995년에 도전님께서 선화 하시면서 비로소 완전히 해독 가능할수 있게 되었다.
위와 같이 글자 한자(一字)도 허투루 쓰신 것없이 1985년 부터 시작된 대두목으로의 종통 이양과 함께 1995년 우당상제님 선화 이후까지 완벽하게 예언하고 계신 것이다.
증산상제님, 정산상제님, 우당상제님, 대두목으로 종통이 계승되지만 모두가 판 밖에서 새로운 종단을 세웠던 사실을 인식해야만 이 싯구절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즉 도전님 선화 후에 대두목이 이끄는 종단을 찾으라는 '천명(天命)'을 담은 것이다.
대순진리회에서 우당 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하면서, 우당상제님 선화 후에는 진정 삼존불을 모시는 대두목을 판밖에서 찾으라는 것이 증산상제님의 뜻임을 이 시에서 명백히 밝히신 것이다. 이 구절을 보고도 대두목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 수도인들과 종단들은, 증산상제님을 간판으로 내세워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할 뿐, 증산상제님의 진정한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시유기시 인유기인(時有其時 人有其人)이다. 태조 이성계의 권한을 세종대왕이 물려 받았는데 여전히 이성계를 직접 받들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태조 이성계를 받드는 사람은 세종대왕 한사람이면 되고 나머지는 세종대왕을 통해서만 이성계 유지(遺志)를 받들수 있다. 이것이 왕통(王統)이다.
1995년 이후 현시대는 대두목이 증산상제님의 모든 권한을 위임 받아서 행사하시고 계시다. 증산상제님을 받들려면 대두목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것이 종통(宗統)이다.